국수를 한 그릇 먹고 마당가에 나 앉았습니다. 장미가 피었습니다. 덕분에 칙칙한 시멘트의 담장이 붉습니다. 담장 앞의 어린 자두나무에도 첫 열매가 몇 개 열렸습니다. 앵두는 벌써 익어 갑니다. 앵두의 붉은 빛은 참으로 어여쁩니다. 익어 가면서 드러나는 붉은 투명은 보는 이를 미소 짓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색감입니다. 언젠가 앵두의 익어 감이 좋아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도 잠시 잊게 할 만큼 황홀하다는 뜻을 시로 적어 보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벌써 예전에 썼던 시들에 대한 추억이 하나씩 둘씩 떠오르는 나이가 되었다는 이 곤혹스러움!).
새들이 지저귑니다. 감기가 꽉 잠기긴 했지만 오랜 만에 맞는 주말의 한가함입니다. 한가하긴 해도 무언가에서 완전히 풀려난 기분은 아닙니다. 하긴 완전히 풀어 주진 않죠. 목숨이라는 근원적 굴레는 언제든 남는 거니까. 그래서일까? 완전히 풀려난 느낌을 찾아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것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시베리아 같은 데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느닷없이 해 봅니다. 아주 먼 데, 아주 먼 데로 가고 싶다는…… 제게 아주 먼 데의 지명은 시베리아인지 모릅니다. 가 보지 않은 곳입니다. 하긴 도솔천 같은 데를 둘러보고 싶기도 하지요. 그러나 거기는 돌아올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니 여행이라기보다 하직이라고 해야겠죠. 하직이라 하니 담장에 장미 만발한 봄날에는 영 어울리지 않네요.
게으른 나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하여 이병률 같은 친구의 지구촌 여행기를 접하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따라나서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는 않는 편입니다. 완전히 풀어지지 않은 마음 상태로의 여행을 내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행할 때마다 느낍니다. 여행은 불시에 떠나야 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여행 철학까지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시도가 매번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떠난 자리에서 풀려 따라온 끈을 의식하게 되니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런 걸 보면 분명 저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선거가 끝나니 여기저기에 후일담들이 생깁니다. 당선사례의 플래카드도 펄럭입니다. 낙선 인사도 여럿입니다. 그건 물론 순수한 인사이겠으나 내심으로는 다음에 다시 해보겠다는 다짐 내지 오기로 비쳐지기도 해 제 스스로 씁쓸합니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불신이 많이 싸인 모양입니다. 여하튼 소란이 일단 지나가니 시원합니다. 결과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강을 어떻게든 돌이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타난 것이 제일 반갑습니다.
중국 시안을 여행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병마용이라는 거대한 고대 유물을 관광할 때 진시 황릉의 발굴이 유보되는 이유를 들었는데, 참으로 근사했습니다. 먼 훗날 지금보다 훨씬 고고학적 발굴 기술이 발전한 다음에 발굴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에서랍니다. 그러한 면은 역시 대국적인 세계관이라고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당장 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관광객이 훨씬 많이 찾아오고 수익이 늘어날 것이 뻔한 일이지만 그들의 철학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내 치세 기간의 업적이노라' 하지 않겠다는 대국적인, 장대한 정치 철학의 일면을 보는 듯해서 좋았습니다.
지금 우리 강에 들이미는 포크레인 사업은 어떻습니까. 그것도 한꺼번에…. 그렇게 위급한 것을 왜 이전 정권에서는 언급조차 안했는지 의아스러울 지경입니다. 하여튼 백 번 양보해도 그렇습니다. 언제든지 후손들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제 임기 안에 다 해야겠다는, 그래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 되겠다는 욕망이야말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씩 검증을 받아 가면서 진행하자는 논리도 통하지 않는 걸 보면 마친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한 느낌입니다.
이제 강과 그 강의 뭇 생명과 강물에 반짝이던 햇빛과 노을과 달빛, 여울물소리와는 영 이별인 모양입니다. 수수만년 우리의 벗이었던 그 풍경과는 영 이별입니다. 목월의 시 <나그네>의 풍경은 다시 인공적으로 만들어 보여 줘야 할 판입니다. 옛날에 저렇게 아름다운 강이 있었단다 하면서 말이죠.
시뻘겋게 드러난 강바닥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심정이었는데 그래도 이번 선거가 그 사업, 아니 그 가짜 업적 쌓기의 욕망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강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가한 주말의 오후가 답답해졌습니다. 다시 앵두나무 앞으로나 가야겠습니다. 앵두야. 무슨 노래를 부르느냐 그 빛으로…….
휴식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만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습니다. 무등산 서석대의 눈동자를 생각해 봅니다. 늘 보이진 않는 눈동자를 의식해야 한다는, 이른바 '신독(愼獨)'의 정신을 새삼 생각해 보는 오후입니다. 다음 소식이 올 때쯤이면 벌써 앵두는 지나가고 말겠지요. 소나기가 그립도록 벌써 더위가 큽니다. 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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